[김은아의 도시스카프] 사람은 `왜`, `늘` 무언가를 심고 싶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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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의 도시스카프] 사람은 `왜`, `늘` 무언가를 심고 싶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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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지 많다고들 하지만 정작 손에 닿지않아 숫자로 존재하는 정원, '그림의 떡'에 불과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시스템 미화가 아닌 공존, 도시 재생 새 기준 돼야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한 풍경이 오래도록 기억이 남아있다. 원래 가로수가 있던 자리였는데 유독 그곳에만 나무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화사한 꽃밭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각종 화분과 작은 돌 조경까지 살뜰한 손길이 배어있었다. 태풍에 쓰러진 고사목을 베어내고 남은 자리를 발 빠른 상점 주인이 차지해서 '한 뼘 정원'을 만들었던 것이다. 빠진 이가 휑하니 보이는 것보다 나은 일이긴 하다. 사람들은 왜 '빈 땅'을 보면 그냥 두지 못하는 것일까? 무언가를 심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소방관야간수당
어르신들은 손바닥만 한 빈터라도 보이면 대파, 고추, 배추 등 각종 작물을 심으신다. 단순한 먹거리보다는 돌보는 마음이 담긴 '작은 정원' 내지는 '농장'일 것이다. 그마저도 아쉬운 도심의 주민들은 '꽃이나 화분'을 집 안에 들인다. 철철이 바뀌는 꽃을 가꾸는 일이 주는 기쁨과 식물과의 교감에서 오는 안정감은 분명 소중하다. 그러나 한국sc저축은행
이 돌봄은 가끔 또 다른 소비의 방식으로 변하기도 한다. 보기 좋게 만들기 위해 살충제를 뿌리고, 병충해를 막기 위해 흙을 소독하며, 잡초를 없애기 위해 화학약품을 사용한다. 꽃은 남지만, 그 아래에 살아야 할 곤충과 미생물은 사라지고, 토양의 생명력은 사그러든다. 생명을 위한다며 생명의 얼개를 끊어내는 역설이 반복된다. 도시 생태계는 사금융대출
이러한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우리는 자연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 본질에는 멀리 서 있다. 녹지율은 높아 보여도, 일상에서 체감할 수 없는 녹지는 설득력이 없다. 서울시는 전체 면적의 약 25.5%가 녹지이고, 1인당 공원 면적은 약 17.74㎡이다. 그러나, 주거지에서 300m 이내를 기준으로 하는 생활권 공원 면적, 즉 실제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접근할환승론자격
수 있는 생활권 녹지는 1인당 약 5.7㎡로,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9㎡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림의 떡'인 셈이다. 숫자는 많지만 손에 닿을 수 없는 녹지, 그래서 그것이 도시민의 삶을 더 각박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정서적 장식물'이 아니라, 생명체가 살아 숨 쉬는 공간, 그 생명을 사람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여건이제일은행이율
중요한데, 그 감각은 점점 무뎌져 가는 것 같다. 어느 건설회사가 새 아파트 단지를 홍보할 때, 가장 먼저 내세우는 것은 녹지율이다.'친환경 단지', '숲세권', '생태 주거단지' 같은 문구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그 녹지는 과연 우리가 닿을 수 있는 공간일까 아니면 그저 병풍일까? 정교하게 다듬어진 잔디밭, 단일 수종으로 심어진 나무들대출사금융
, 병충해 걱정 없이 사계절 푸른 조경 식물들. 이러한 공간들은 마치 생태계의 가면을 쓴 인공 풍경처럼 보인다. 이렇듯 인간의 미적 취향과 관리 편의성만을 고려한 녹지는 진정한 생명의 터전이 되지 못한다. 사람들은 나무 한 그루보다 숲을, 숲보다 새와 곤충, 그리고 동물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더 좋아한다. 그 이유는 인간도 결국 그스피또 즉석복권
생명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가는 어울림은 본능적인 평온을 주고, 다양한 생명과의 연결은 안온함을 가져온다. 그것은 단순히 자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일부로서 느끼는 안정감이자 일체감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얼개이며, 우리가 속해 있는 시스템이다. 생태학자들은 이것을 '생태적 연결성'세이빙론
이라고 부른다. 여러 연구에서 인간의 정신적 건강과 자연과의 접촉 사이에는 명확한 상관관계가 입증되었다.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정신 건강이 좋아지는 것은 단순히 공기가 깨끗해서가 아니라, 생명과의 접촉이 더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병원에서도 창문 너머로 나무가 보이는 병실의 환자들이 회복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서든어택4월6일
본능적으로 자연과의 연결을 갈구한다. 꽃은 예쁘면 그만이고, 나무는 그늘을 주면 충분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곁에 있는 벌과 나비, 그 벌레들이 머무를 수 있는 풀과 흙, 물의 흐름 같은 요소들이 없으면 도시는 '유리병 속 마른 조화'처럼 생기 없는 공간이 되어버린다. 생명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생명을 꾸미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연차휴가규정
최근 각광받는 도시재생사업들도 이 관점에서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벽화를 그리고, 골목길을 정비하며, 작은 화단을 만드는 일은 의미 있는 변화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생태적 회복으로 이어지려면, 인간만을 위한 미학이 아니라 다양한 생명체가 함께할 수 있는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 옥상 정원을 만들 때, 단순히 휴식 공간으로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찾아올 수 있는 곤충과 새들, 심지어 작은 포유류까지 고려한 설계가 필요하다. 단순한 녹지 확보가 아니라, 작은 생명들의 연결성과 관계성을 되돌려 놓는 것이다. 도시에서 공존은 거창한 생태복원만을 뜻하지 않는다. 콘크리트 사이로 드러나는 흙 한 줌, 아이가 물을 줄 수 있는 모퉁이 화단, 나비가 쉬어갈 수 있는 들꽃 몇 포기, 곤충과 작은 새들이 와서 앉아 쉴만한 낮은 관목과 나무. 이러한 소소한 공간들이 도시에서 살아있는 생명의 얼개를 되살리고,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시킨다. 자그마한 아파트 화단일지라도 주민이 물을 주고, 함께 가꾸며 아이들이 다가갈 수 있는 공간이라면, 그리고 새와 각종 곤충이 머무는 생명의 쉼터가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누가 보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하는가인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단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상호 교감을 할 때 비로소 안정과 평화를 얻는다. 도시는 이제 꽃을 더 심는 '도시 미화'에서 나아가 생명을 더 이해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 이해가 곧 돌봄이 되고, 돌봄이 곧 공존이 된다. 자연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공존은 철학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도시의 미래는 우리가 매일 걷는 길 위에, 작지만 살아있는 공간이 더해질 때 비로소 생명을 품은 풍경으로 변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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